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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시민사회(마이클 에드워즈) 서평

by 합리적 의심 2021. 1. 6.

본 글은 한국정치 교양 강의를 들으면서 진행한 서평의 자료입니다. 해당 서적을 읽으면서 떠올린 개인적 질문과 그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를 다룬 글로, 실제 학계의 의견과는 무관합니다. 글에 드러난 개인적인 정치적 지향은 필자의 얕은 정치적 식견에 기반을 두고 있으므로 이점 양해바랍니다. 참고문헌은 아래에 표기하오니, 즐겁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미래입니다.” 이 말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제8회 노사모 총회의 축하 메시지로 남긴 말이다. 나는 이 말이 대한민국 시민사회를 함축함과 동시에 바보노무현이 꿈꾸었던 사람사는 세상을 나타내기에 참 좋아한다. 우리는 수십 년, 그리고 수차례에 걸쳐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 대한민국의, 그리고 우리의 미래를 바꾸는 모습을 봐왔다. 19604·19 혁명, 19805·18 광주민주화운동, 19876·10 민중항쟁, 2016년 촛불 혁명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수도 없이 뒷걸음칠뻔한 대한민국을 구해낸 시민사회, 그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시민사회라는 것이 존재함은 알고 있지만, 그것이 얼마만큼 그리고 어디까지 뻗어있는지를 알지 못한다. 그것은 개인, 시장, 국가의 영역에 걸쳐있는 미지의 영역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책의 저자, 마이클 에드워즈는 우리를 대신해 미지의 영역이라는 퍼즐을 풀어냈다. 그는 시민사회는 우리가 성취해야 할 어떤 목표(좋은 사회)인 동시에 그 목표에 이르는 어떤 수단(결사적 삶)이자, 목표들과 수단들을 매개로 상호 개입하는 모종의 체계(공공영역)라고 보았다. 시민사회라는 미지의 영역을 바라보는 세 가지 입장을 모두 반영하여, 마치 다리가 3개인 의자와 같이 서로의 장점을 강화하고, 약점을 보완함으로써 완전해지는 존재라고 본 것이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서양이라는 액자 틀에 맞춰서 풀어냈을 뿐이다. 그가 풀어낸 시민사회라는 퍼즐을 대한민국이라는 새로운 액자에 맞춰 풀어내는 것은 우리의 몫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민주주의의 자유화, 이행, 그리고 공고화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의 민주화 역사를 다룸에 있어서 시민사회, 더 정확히는 시민단체는 불가분의 관계일 것이다. 절차적 민주주의가 본격적으로 마련된, 그리고 대한민국이 진정한 민주주의로 이행한 87년 체제 이전의 시민사회는 절름발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랫동안 한국사회는 시민사회라는 퍼즐을 결사적 삶에 맞춰 풀어왔고, 그 결과 시민사회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시민단체들의 총합 내지는 공간 차원에서 시민단체들이 활동하는 영역에서 그칠 수밖에 없었다. 마이클 에드워즈가 지나간 길을 따라서 나는 되돌아보고자 한다. 절름발이였던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시민사회가 홀로서기까지의 과정을. 그리고 지켜보고자 한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시민사회가 어떤 미래로 나아갈지를.

 

87년 이전의 시민사회

대한민국 민주주의 그리고 시민사회의 과거는 저항과 투쟁의 역사였다. 한국전쟁 이후 국가권력은 억압적인 강권력과 냉전 반공주의 헤게모니에 기대어 시민적 권리를 제한해왔고, 대의 민주정치의 중심인 정당과 의회는 시민사회로부터 유리되어 민의를 대변하기보다 사적인 이해관계를 챙기기에 급급했다. 시민사회는 부정부패와 비민주성으로 물든 국가권력의 지배 정당성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며 들고일어났고, 그동안 쌓여있던 군부 독재에 대한 정치적 불만은 결정적으로 6월 민주항쟁에서 전국적으로 폭발했다. 이때 시민사회가 부정한 국가권력에 대항하는 민중항쟁의 사회적 기반이자 최후의 보루였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시민사회가 폭발한 87년을 기점으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그리고 시민사회의 역사가 바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87년 이전은 권위주의 정부, 군부 독재에서 민주주의로 이행하기 위한 사투였고, 87년 이후는 절차적 민주주의로 이행한 후 이를 어떻게 공고히 하느냐의 사투였다. 87년 이전의 시민사회는 국가 대 시민사회의 단일 대결 구도 하에 정치적 민주화라는 같은 위상의 좋은 사회를 바라는 시민사회 내의 다양한 세력들이 광범위한 연대를 통해 군부 독재에 대항한 결사적 시민사회였다. 그리고 동시에 민주적 규칙과 절차라는 공공영역을 상실한 불완전한, 절름발이 시민사회였다.

이러한 절름발이 시민사회는 6월 민주항쟁을 통해 억압적인 국가권력을 공식적으로 굴복시켰으며, 국가는 지배의 정당성을 회복하는 한편 시민사회의 저항을 잠재우기 위해 대통령 직접선거라는 절차적 민주주의 제도를 도입함으로써 제한적 그리고 형식적인 민주화, 즉 87년 체제가 수립되었다. 그렇다면 민주화로의 이행이라는 시대의 과업을 이루기 위해, 좋은 사회를 이룩하기 위해 결집한 시민사회의 정치적 역할은 여기서 그대로 끝나는가? 그렇지 않다.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상징되는 6·29 선언이 구정치세력들 그리고 여당과 야당에 의해 보수적으로 종결되면서, 억압적 국가와 저항의 시민사회라는 선악의 이분법적 구도 아래에 새로운 정치적 역할을 부여받았다.

 

87년 이후의 시민사회

불완전하면서도 보수적 타협에 그친 87년 체제는 대통령 직선제와 절차적 민주주의 틀의 형성이라는 제한적이고 형식적인 민주주의에 그쳤고, 민주주의를 더 공고히 하고, 심화하는 것, 민주적 개혁이라는 사명은 자연스럽게 시민사회에게 맡겨졌다. 시민들의 절대적인 신뢰에 힘입어, 시민사회는 성장과 발전을 거듭하여 87년 체제 민주주의의 공백을 채우는 중요한 정치행위자로 자리매김하였다. 그리고 동시에 ‘깨끗하고 정의로운 유사정당’이라는 정체성을 확립하게 되었다.

이러한 시민사회의 새로운 정체성과 더불어 비록 그것이 제한적이고 형식적인 민주화일지라도 87년 체제는 그 자체로 87년 이후의 시민사회를 이전의 시민사회와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변화시켰다. 우선 정치적 민주화라는 같은 좋은 사회의 위상 아래에 하나로 뭉친 결사체들은 절차적 민주주의의 도입으로 서로 다른 좋은 사회의 위상에 따라 내부적으로 분화하였고, 이는 국가 대 시민사회의 단일 대결 구도를 국가와 시민사회의 다층적 대결 구도로 바꾸었다. 그리고 민주화로의 이행을 통해 시민사회는 비로소 공공영역을 갖춘 완전한 모습으로 홀로 설 수 있었다. 이러한 시민사회의 변화는 국민의 절대적인 지지에 힘입어 폭발적인 성장과 더불어 2000년 총선시민연대의 낙천·낙선 운동, 2002년 대통령선거, 2004년 대통령 탄핵반대 촛불 시위, 17대 총선에 이르기까지 막강한 정치적 영향력을 보여줬고, 그 중심에 있는 것이 시민단체, 이른바 결사체였다. 당시의 여론조사는 시민단체를 한국을 움직이는 가장 영향력 있는 집단 1위로 꼽을 정도로 결사체로서 시민사회의 영향력은 엄청났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비폭력적·합법적 운동을 추진하겠다는 목표 아래에, ‘시민’을 운동 주체로 삼아 전문가가 참여하는 대안 제시 운동을 선보였다. 이러한 경실련의 운동방식은 이전에 동참하길 주저하던 전문가들이 대거 참여하도록 하였고, 전방위적인 쟁점들을 다루는 종합적 시민운동에 앞장섰다. 그리고 이렇게 성장한 시민사회의 모든 역량이 최대로 결집한 것이 2000년의 총선시민연대였다. 총선시민연대의 낙천·낙선 운동은 부패한 정치인의 물갈이를 목표로 1,054개의 단체가 동참하였고, 그 결과 낙선 후보 가운데 69%가 낙선하였고, 특히 수도권에서는 거의 전원이 낙선하는 등 우리 역사에서 시민운동 그리고 시민사회가 무엇을 할 수 있고, 얼마나 많은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가를 보여준 극적인 사례로 여겨졌다.

그러나 시민사회의 이러한 성장이 무색하게도 제도권 정치는 여전히 퇴행적이었으며, 제도권을 둘러싼 극단적으로 우경화된 정치지형은 시민사회의 공공영역을 협소하기 그지없는 보수적 공공영역으로 제한하였다. 이에 더불어 보수언론의 편파적이고 불공정한 보도와 논평은 비판적인 공공영역의 활성화를 방해하고, 체계적으로 왜곡된 여론을 형성하여 시민사회의 공론장을 이데올로기의 난투장으로 바꾸었다. 이때 최초로 인터넷이 공론장이나 정치적 의사 표현의 통로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사건이 바로 효순이·미선이 촛불집회이다. 여중생인 효순이와 미선이를 미군 장갑차에 치여 숨지게 한 미군에 대한 기소가 한미 군사협정을 이유로 기각되자, 이에 분노한 시민들이 인터넷을 통해 여론을 형성하고 이에 대한 광범위한 호응이 촛불집회라는 추모 행동으로 이어진 사건으로, 87년 이전의 폭력적인 시위와 달리 비폭력·평화 시위였기에 많은 시민의 지지를 받아 노무현 탄핵반대 시위, 2016년 촛불 혁명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 시민사회의 대표적인 시위문화로 자리 잡았다.

이처럼 87년 이후의 시민사회는 87년 체제의 절차적 민주주의의 도입을 통해 시민단체, 즉 결사체로서의 시민사회, 인터넷을 통해 공공영역, 공론장으로서의 시민사회에서 성공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그리고 이러한 시민사회의 성장은 참여정부에 들어서서는 더욱 뚜렷해졌다. 참여정부는 국가 영역을 시민사회에 개방함으로써 정치권에 의한 권력의 독점 현상을 와해하고자 했고, 시민의 적극적인 정치참여를 장려하기 위해 청와대 국민참여수석실을 신설하고, 고위 공직의 부분 개방, 시민단체의 국가정책 결정 과정 참여 등의 정책을 펼쳤다. 이러한 참여정부의 정책과 2004년 17대 총선에서 시민운동에 우호적인 여당이 승리를 거두면서, 시민사회는 더욱 성장할 것이라 기대했다. 그러나 낙관적 전망과 달리 시민사회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시민사회의 현재

거대한 시민단체가 이끄는 운동은 여전하지만, 이전까지의 폭발적인 성장이 무색할 정도로 결사체로서 시민사회의 영향력은 축소되었고, 시민사회를 이끄는 운동의 주체 또한 거대 운동단체에서 풀뿌리 조직으로 전환되었다. 무엇이 시민사회의 형태를 정반대로 바꿔버린 것인가? 그 해답은 87년 체제에 있다. 87년 체제가 가진 후진적인 대의성을 대신해서 정치적 개혁을 이뤄낼 수 있는 새로운 대의체가 필요했기 때문에, 시민사회는 민의를 대변하지 못하는 정당 그리고 여야 간의 극단적인 투쟁과 로비를 일삼는 파행적인 국회를 상대로 우월한 도덕성을 가질 수 있었다. 이러한 시민단체의 정치적 역할은 필연적으로 시민단체 스스로가 정치세력으로 전환하는 정치화 과정을 포함할 수밖에 없었다. 민주화 이후 시민단체의 일부 인사, 운동가들이 정부의 요직에 발탁되는 것에서 시작하여, 참여정부에 이르러서는 정치에 의해 시민사회가 포섭되기 시작했다. 시민사회는 시민운동의 인력뿐만 아니라 이들이 가진 운동의 의제마저 동시에 잃어버려 동력을 상실했고, 동시에 가장 믿을 수 있는 집단이었던 시민사회가 가장 믿을 수 없는 제도권과 결탁함으로써 시민들은 시민사회에 대한 신뢰를 거둬들였다. 그리고 시민을 동원의 대상으로만 인식하고 이들을 운동 주체로 키워내지 못한 거대 시민단체의 시민운동 역시 대가를 치르게 되었다. 효순이·미선이 촛불집회를 기점으로 인터넷을 통한 운동이 활성화되면서, 이슈에 따라 수시로 이합집산하는 형태로 시민이 운동의 주체로 나서게 되자, 시민단체는 이러한 운동방식에 있어서 주도권을 상실하게 되었다. 87년 체제에 힘입어 비대해진 중앙집권적 시민단체, 결사체로서의 시민사회는 과잉 정치화와 ‘시민 없는 시민운동’을 장기적으로 이끌어 온 대가로 시민의 신뢰를 상실하였고, 동시에 시민들이 생활 정치로 눈을 돌리면서 탈정치화와 ‘시민단체 없는 시민운동’이라는 결과로 귀결되었다. 이로 인해 시민사회는 ‘시민 없는 시민운동’이라는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함과 동시에 시민단체의 영향력 상실로 더는 대안적 거대담론이나 공익성의 이슈를 만들어내지 못할 것이라는 새로운 걱정거리를 얻게 되었다.

그러나 시민단체라는 시민사회의 결사적 부분은 위축되었을지라도, 시민사회는 끊임없이 대한민국 사회의 변화에 앞장설 것이다. 그리고 시민들 또한 이러한 총체적인 변화에 무관심한 것은 결코 아니다. 보수 정권으로의 재집권, 박근혜 정권에 이르러서는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오히려 뒷걸음쳤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87년 체제로부터 30여 년이 지나는 동안 새로운 요구들, 다양한 문화적 전환의 흐름이 나타났지만, 반공주의, 지역주의, 권위주의, 성장주의, 물질주의, 경쟁주의라는 구시대적인 87년 체제의 이데올로기는 변화와 전환의 목소리를 무시해왔다. 그리고 박근혜 정권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 추진, 문화·학술계 블랙리스트를 통한 문화·언론 통제 등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현저하게 후퇴시켰고, 2016년 촛불혁명을 통해 30년간 87년 체제 아래서 억눌려왔던 시민사회, 시민들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러나 터져 나온 시민사회의 목소리가 외치고 있는 것은 박근혜 정권의 규탄이 아니다. 이는 지난 30년간 대한민국을 지배해온 87년 체제를 규탄하는 목소리였다.

 

시민사회의 미래

지금까지 우리는 시민사회가 걸어온 발자취를 돌아보았다. 이제 우리는 마지막 질문에 답할 차례이다. 시민사회는 어디로 가는가? 그리고 어디로 가야 하는가? 시민사회의 무대가 국가 상관의 거대담론에서 일상적 생활세계로, 시민운동의 주체가 중앙집권화된 거대 운동단체에서 풀뿌리 조직으로 전환되었지만, 이들이 추구하는 서로 다른 목표가 ‘좋은 사회’에 있음은 변함이 없다. 문제는 위기에 처한 결사적 삶을 구하고, 협애하기 그지없는 보수적 공공영역에서 시민사회를 어떻게 해방하는가이다.

엄혹한 군부정권 시기를 견뎌온 우리의 결사적 삶, 시민단체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위기에 봉착했다. 작년 말부터 올 한해를 지배한 코로나의 공포는 결사적 삶을 여러 방면으로 억압했다. 우선 개인 간 접촉과 소규모·대규모 모임을 지양하라는 지침 속에 시민단체의 활동은 제약을 받지 않을 수 없었으며, 유례없는 범유행 전염병 상황 속에 시민들이 전폭적으로 ‘국가’에 집중하고 의존하게 되면서 시민단체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그리고 코로나로 인한 경제적 여파는 시민단체의 재정확보를 어렵게 했다. 혹자는 이런 결사적 삶의 위기가 코로나의 종식으로 해결될 것이라 주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코로나가 종식된 이후가 결사적 삶의 진정한 위기가 되리라고 생각한다. 코로나의 여파는 시민단체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장기적인 사회적 거리두기는 지금까지 쌓여있었던 타인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빠르게 소모하고 있다. 결사적 삶으로서의 시민사회는 이미 한차례 과잉 정치화의 대가로 자신이 가졌던 사회적 권력을 상실하였고, 더불어 시민사회를 이루는 근간이 되는 사회적 신뢰 또한 곧 바닥을 보이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 위기 속에서 우리는 결사적 삶을, 시민단체를 어떻게 구할 것인가? 나는 그 해답이 보수적 공공영역, 극도로 우경화된 정치지형에서 시민사회를 구하는 것에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87년 체제는 시민사회가 지금까지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원인인 동시에 시민사회의 성장을 억제하는 한계이기도 하다. 물고기가 어항의 크기에 맞춰 성장하듯이, 지금의 87년 체제는 시민사회라는 물고기를 담기에는, 시민사회의 성장을 감당하기에는 너무 좁다. 이제 우리는 낡고 비좁은 87년 체제라는 어항을 벗어나, 새로운 시대, 바다로 나아가야 한다. 그 첫 시작은 무너진 대의민주주의를 회복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을 과두지배해 온 수구와 보수는 87년 체제를 청산하고 새롭게 나아가는 대신에, 지금의 체제를 유지하기로 결탁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결탁은 시민의 뿌리 깊은 정치불신으로 이어졌다. 이 무너진 대의민주주의와 시민의 정치불신을 해결하는 일은 시민사회가 아닌, 대의민주주의 기관인 국회의 몫으로 남아있다. 나는 청와대 국민청원에서 그 가능성을 엿보았다. 국회나 국민신문고 같은 다른 의사 표현의 통로가 있음에도 사람들은 왜 청와대 국민청원에 몰리는가? 그것은 ‘시민’이 물으면, ‘청와대’가 답해주었기 때문이다. 뗏법 창구, 손가락 놀이터라는 부정적 평가가 있을지라도, 일반 시민이 별다른 제약 없이 정치지도자에게 자신의 의견을 전달하고, 대답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은 이전 정권에서 위축되었던 정치적 자신감을 회복시켰다. 이제는 국민의 대의기구인 ‘국회’가 ‘시민’의 질문에 답할 차례이다. 그동안 국회의 국민청원은 복잡한 본인 인증절차라는 참여의 벽을 쌓고 있었다. 이제는 이 벽을 허물고 폭넓은 참여와 의견수렴의 장, 공론장을 시민들에게 열어줄 시간이다.

무너진 대의가 복구되고, 시민들이 주권자로서 책임을 다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된 이후의 일은 시민사회의 몫이다. 민주주의의 공고화는 절차적 민주주의라는 제도의 완성만으로 실현되는 것이 아니다. 시민들의 적극적이고 자발적인 참여를 통해 달성될 수 있다. 그리고 설 자리를 잃은 시민단체, 결사적 삶으로서의 시민사회는 다시 일어서야 한다. 다원화되고 분산된 풀뿌리 조직이 87년 체제를 전환하기 위해선 ‘분산된 대중의 연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시민사회가 진정으로 주권자로서 책임을 다할 수 있을 때, 우리는 거짓뿐이었던 군부정권의 ‘정의로운 사회’, ‘보통사람의 시대’라는 강령을 우리의 미래로, 현실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옛날엔 지도자가 똑똑해야 나라가 편했다. 그러나 지금은 주권자가 똑똑해야 나라가 편하지 않겠는가? 강물이 바다를 포기하지 않듯이, 우리는, 시민은 시민사회가 나아갈 미래를 포기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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