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은 문학교양 강의를 들으면서 진행한 문학비평의 자료입니다. 해당 문학작품을 읽으면서 떠올린 개인적 질문과 그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 인상깊은 부분에 대해 짧게 다룬 글로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이므로 실제 학계의 의견과는 무관합니다. 문학작품의 자료와 참고한 논문자료는 아래에 첨부하오니, 즐겁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본 작품 혈의 누는 신소설의 효시라고 여겨지는 기념비적 작품으로, 우리가 흔히 고등학교애서 배운 고전소설과는 여러 점에서 차이가 있다는 점을 유념해주길 바란다. 본 작품에서는 작중의 주인공이라고 볼 수 있는 옥련과 옥련의 조력자 역할을 하는 구완서의 모습을 통해서 그 당시 개화 지식인의 모습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데, 이러한 표현방식은 민중의 계몽을 촉구하고자하는 작가의 의도와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작품의 주제의식의 전달에 있어서 소설 전개의 개연성에 의문을 품게 하는 부분이 존재하는데, 바로 미국으로 건너가 옥련과 재회하는 최주사 부녀가 옥련과 구완서의 혼인에 대해 상의하는 부분이다. 여기서 내가 던지는 의문은 근대적 개화 지식인의 관점을 가진 등장인물인 옥련, 구완서, 김관일 등이 혼인은 미국에서 공부를 끝마친 후로 미뤄도 문제 없다는 발언은 납득할 수 있으나, 조선의 봉건적 결혼관을 고수하는 최주사, 옥련의 모가 혼인 문제에 있어 강경한 입장을 취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작중에서 옥련의 모는 김관일과 옥련이 죽었다고 생각하고, 자신 또한 강물에 몸을 던져 죽음을 택할 정도로 강한 봉건적 가치관을 가진 인물이고, 그녀의 아버지인 최주사 또한 마찬가지로 강한 봉건적 가치관에 사로잡힌 인물로 묘사된다. 따라서 이로 미루어 볼 때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고려한다면 옥련과 구완서의 혼인에 대한 관점은 당시 조선 사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이러한 전개를 택한 까닭에 대해 나는 이렇게 추측한다. 작가 이인직이 작품 내에서 청을 숭상하는 봉건적 가치관의 붕괴와 일본과 미국의 모습을 통해 근대화된 개화기 지식인의 사상을 보여주려 한다는 점에서, 혼인 논쟁에 있어 최주사가 내심 불만을 가짐에도 별다른 반대의사를 표명하지 않는 모습을 통해서 봉건적 가치관의 붕괴와 기존 보수 지식인들이 근대적 가치관을 수용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라고 생각된다.
작가는 이러한 장치 외에도 자신이 가진 조선과 일본에 대한 시각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데, 14p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14p에서 "조선 풍속 같으면 청상과부가 시집가지 아니하는 것을 가장 잘난 일로 알고 일평생을 근심중으로 지내나, 그러한 도덕상의 죄가 되는 악한 풍속은 문명한 나라에는 없는 고로, 젊어서 과부가 되면 시집가는 것은 천하만국에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정상 부인이 어진 남편을 얻어 시집을 간다."는 정상 부인의 재가하는 까닭을 조선과 일본의 서로 다른 과부의 재가 허용에 대한 관점을 빌려 설명하는 대목이다. 이 부분에서 작가는 과부의 재가를 반대하는 조선의 봉건적 가치관을 미개한 풍속이라 폄하하는 동시에 일본을 문명한 나라라고 치켜 세움으로써, 자신의 조선과 일본에 대한 시각을 과부의 재가 허용이라는 단편적 소재를 빌려 작품 내의 서사에 간접적으로 드러낸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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